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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너머 그가 있다
‘따로 또 같이’ 함께 사는 행복

 

제한된 시간을 홀짝이면서 늘 뜨거웠던 연인.넉넉해진 시간과 가까워진 거리만큼 긴장이 떨어지는 부부.
‘결혼은 동화가 깨어진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이 된 것뿐’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던져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가 잦네. 오늘도 놀러 가기는 글렀다. 이런 날 남편은 퍼질 대로 퍼진 비 오는 날의 수제비처럼 하루 종일 소파 위에서,혹은 침대 위에서 퍼져 있곤 한다. 결혼하기 전 비가 오면 우리는 주로 카페에서 노닥거리곤 했다.

 

그리고 차들이 하나 둘씩 헤드라이트를 켜고 바다 위를 둥둥 떠가듯 도로를 달릴 시간이 되면 우리는 손을 잡고 소주를 마시러 갔다. 비가 오는 날은 술이 달았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입술도 달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한꺼번에 들이 켜기엔 그 양이 너무 적었으므로.

 

결혼 전 남편은 멀리 남부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주말마다 올라왔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내려가곤 했다. 기차 시간은 우리의 연애를 더욱 성마르게 해 주는 하나의 훌륭한 장치였다.

 

이틀의 시간을 맛있게 보낸 뒤 그가 떠나야 될 시간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다가왔고, 그는 늘 정해진 시간에 신데렐라처럼 성급히 인사한 뒤 기차역으로 뛰었다. 모든 연인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그때 마술에 걸렸던 게 틀림없다. 생활하는 장소가 천 리 만 리 떨어져 있으므로,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졌다. 더 애틋했다.

 

그러나 우리의 마술은 결혼과 동시에, 아니 결혼이 기정사실화 되면서부터 깨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술이 깨지고 남루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의 아연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우리에게 더 이상 애틋함이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헤어질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함께한다. 결혼한 우리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일상이다. 비가 온다고 제한된 장소에서 데이트를 할 필요도 없으며, 밤이 늦어 헤어질 일도, 시간에 쫓기며 만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불시에 사고가 나지 않는 한, 퍼마시고 마셔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항시 대기 중이다.

 

그렇다. 문제는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많은 시간, 그리고 풀려 버린 긴장이다. 남편이 방에 혼자 들어가서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나와 대화하지 않고 텔레비전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입을 삐쭉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버려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결혼과 동시에 동화가 깨진 걸까. 동화는 늘 주인공 남녀가‘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 끝났다. 하지만 이 말은 매우 구체성이 떨어지는 언급임을 알았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제 나는‘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이지’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남편처럼 슬슬 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즐기기 시작했다.그리고 그와 내가 함께하는 시간이면 나는 열심히 그와 함께했다. 나는 결혼해서 함께 산다는 것을 서서히 내 방식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따로 또 같이. 동화는 깨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만남이 기차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홀로 헐레벌떡 플랫폼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 아닌가. 애틋함과 긴장은 없지만 우리는 이제 편안히 함께할 수 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나와 연애하기 전에 누렸던 일요일을 찾았을 테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연애하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을 뿐.우리는 함께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각자가 누려 온 자신의 삶에 몰두한다.그가 방문 밖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는 것만 해도, 천 리 길 떨어져 있던 그때에 비하면 행복이다. 그를 부르면 그는 10초 안에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가까이 있다. 그리고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졌다.오늘은 비가 온다. 가을비. 가을비가 오는 날 그와 술을 한잔 마신다.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나 역시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우리는 한집에서 함께한다. 술은 이제 더 이상 조금씩 나누어 마실 필요가 없다. 원샷! 그리고 그의 입술도 원샷!

 

글|성서현
결혼 1년 차 주부이자 칼럼니스트. 동갑내기 남편, 두 달 된 딸이 있으며, 국문과를 졸업한 후 잡지사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다가 서른을 넘긴 어느 날 수능을 다시 보고 띠 동갑 동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저서로는‘결혼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서울북스 )이 있다.

            

           웨프, 웨딩21, 한국결혼박람회(2008.1.5~6.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3호선 학여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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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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